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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올림픽 판정사기? 1972년 미국 남자 농구팀의 메달 거절한 이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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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55회 댓글 0건 작성일 20-06-24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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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8월 27일부터 9월 9일까지 열린 뮌헨올림픽은 2차세계대전에서 패전 이후 새로운 각오를 다지던 개최국 독일과,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냉전상황등 여러가지 복잡미묘한 국제정세 속에서 개최 되었습니다. 


게다가 9월 5일 팔레스타인의 독립운동 단체인 PLO의 과격단체인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단의 숙소를 공격, 납치한 후 11명의 선수들을 살해한 참사까지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이 판정에 영향을 주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지만 미국과 소련의 승리에 대한 집착에 대한 원인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미국 농구 대표팀에는 마이클 조던도 없었고, 칼 말론, 래리 버드나 매직 존슨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코치진들은 전국의 명석한 두뇌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우승에 대한 기대는 여전했습니다. 


하지만 그시절 아니 그 이후에도 최고의 선수중 한명이었던 센터 빌 월튼을 대표팀에 합류 시키지 못한 것은 후에 많은 아쉬움으로 남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당시 대표팀 감독이었던 헨리 아이바의 '모든 선수는 기회앞에 평등해야 한다'는 식의 원리원칙에 대한 충실함이 크게 작용했다고 합니다. 


1972년 이전에는, 어떤 미국 농구팀도 올림픽에서 금메달이 아닌 메달은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정도로 당시엔 미국농구는 세계최강이었었습니다. 물론 후에 '드림팀'으로 화재가 되었던 2002년 세계선수권대회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패하며 자존심을 구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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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자 농구팀은 첫날 체코슬로바키아를 시작으로 호주, 쿠바, 브라질, 일본, 그리고 준결승 상대 이탈리아까지 차례로 격파하며 마침내 결승진출을 확정지었습니다. 하지만,소련 농구 대표팀의 전력은 생각보다 막강했습니다. 우월한 신체조건과, 완벽한 팀웍은 미국대표팀을 당황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ESPN에 따르면, 미국 대표팀은 겨우 12번의 연습경기만을 치루고 참가했지만, 소련대표팀은 400경기 이상을 함께 참가했던 세미 프로의 강자였다고 합니다.

경기 초반 소련팀의 정교한 플레이에 당황한 미국팀의 실책으로 스코어는 벌어지기 시작하여 26-21로 끌려다니며 전반전을 마치게 됩니다. 후반전에도 양상은 크게 달라지지 못했고 소련팀이 5~10점 차이의 리드를 지키며 경기를 이끌어 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국팀의 짐 브루워가 점프볼 상황에서 떨어지면서 머리를 다치게 되고,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미국팀은 승리를 위한 의지를 불태우며 좀 더 힘을 내기 시작했고 종료 2분 전 44-42까지 점수차를 좁히게 됩니다. 


남은 시간 55초, 여전히 소련대표팀이 48-46으로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팀파울로 자유투기회를 얻게 된 소련의 대표 슛터 세르게이 밸로프의 첫 자유투가 실패하면서 점수는 49-46,  이때 미국은 40초를 남기고 브루워의 중거리 슛으로 점수차를 단1점차로 좁혀 놓습니다. 


소련의 공격기회가 미국의 수비에 막히며 공격권이 다시 미국에게 오게 되고 미국팀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격했고, 3초를 남겨두고 콜린스가 자유투를 얻어내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거친 파울로 쓰러진  콜린스가 바로 일어나지 못했지만, 감독의 신임으로 그는 직접 자유투를 던지게 되고 2개 모두 성공시키며 미국에게 첫 리드를 선사하게 됩니다. 드라마?는 이제 부터 시작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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